구정임 동문이 재직하고 있는 항공사는 매출, 보유항공기, 여객 수 부문에서 중동 지역 최대이자 우수한 기내 서비스, 빠른 성장세, 지속적인 흑자 경영으로 항공업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점보’라 불리는 A380을 운항하며 하늘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해 인생을 즐기고 있는 파일럿 구정임 동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글_ 학생홍보팀 학생기자 서지수(일어일문학과 16)
동문님께서 느끼신 덕성에서의 추억이나 장점은?
고등학교 때 이과였는데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를 잘하기도 했고 영어 선생님께서 통역관을 해보라고 추천해주셔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덕성여대에 입학 후 ‘성과 법률’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데, 교양 수업이 다양하게 있어서 좋았답니다. 또 캠퍼스가 예뻐서 다니기도 즐거웠어요. 항상 산책도 하고 공강 시간에는 스머프 동산에서 사진도 찍고 누워서 햇볕도 받았죠. 드라마 촬영도 많이 와서 구경도 가고 축제 때 연예인 보려고 새벽부터 기다렸던 적도 있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대학에 대해 말하면 ‘왜 여대를 나왔냐’고 다시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요. 한 번 더 물어본다는 것은 한 번 더 관심을 갖는 것이니 좋다고 생각해요.
파일럿이 되기 전 승무원이셨는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우연히 4학년 때 취업을 알아보던 중 해외 항공사에 지원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승무원을 양성하는 학원이 많지 않아서 소규모의 그룹 스터디를 하는 것이 전부였어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준비 과정은 참고만 했고 실제 면접 준비는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 영문 검색을 해서 회사의 역사, 보유 기종, 취항 국가뿐 아니라 경영진과 그 항공사가 소재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까지 공부했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그 때 한국에서 해당 항공사가 속한 국가는 생소했는데 워낙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어요.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게 됐다는 기쁨과 안도도 있었죠.
파일럿으로 전향하는 데 어떠한 계기가 있었나요?
파일럿이라는 직업에 원래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객실 승무원으로 3년 정도 일하던 차에 뭔가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어느 날 조종실에 들어가 파일럿과 대화를 하던 중 여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파일럿이 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답니다. 단기간에 결정한 것은 아니고 1년여 동안 파일럿이 되는 과정, 학교 등을 알아보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원하는 일인지, 따르는 위험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 심사숙고하여 결정하게 됐어요.
주변의 만류나 걱정이 심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어머니의 만류가 제일 컸어요. 제가 파일럿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가 26살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남자들이 하는 직업을 왜 멀쩡히 다니던 항공사 승무원직을 그만두면서까지 하려고 하느냐며 반대가 심하셨죠. 하지만 저는 이미 파일럿 학교에 가서 졸업 후 꼭 다시 상업용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캐빈 크루가 아닌 파일럿 신분으로 조종실에 들어오겠다고 다짐한 후였답니다.
비행 학교에 다니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착륙하는 게 어려웠어요. 다들 빠르게 통과했는데 저는 무서워서 못했죠. 한 번은 6시간 동안 떴다 내렸다 연습만 50번을 했어요. 그러다 악에 받쳐서 ‘오늘 끝내고 가겠다’ 마음을 먹었고 마지막에 성공했죠. 그날 이후 그런 두려움은 사라졌답니다. 또 다른 어려움으로는 학교에 가면 여자는 저밖에 없었기에 남자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었어요. 교관도 급우도 모두 남성이라 거기에 맞춰 문화가 형성됐고 심지어 여자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첫 비행기 운항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항공사에 처음 들어가서 첫 비행기를 운항할 때는 ‘아, 내가 오늘 꿈을 이루는 날이구나’ 생각했죠. 저희는 비행 갈 때 기사님이 태우러 오는데 유니폼을 입고 가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요. 승무원을 그만두고 ‘슈퍼점보’라 불리는 현재의 여객기를 몰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는데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항공사는 동양 사람을 별로 뽑지 않아서 파일럿 4,000명 중 한국인은 8명뿐이고 동양 여자는 저 혼자에요. 또 많은 파일럿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회사라 항상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히 여긴답니다.
비행기를 운항하면서 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러시아 비행 때였는데 겨울에 러시아 비행을 가면 보통 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기도 해요. 친한 기장님이랑 갔었는데 활주로에 다 와서 기어를 내리는데 너무 얼어서 안 내려갔던 적이 있었죠. 그때는 복항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갖고 간 연료의 여유분이 없어서 20분 이내에 해결해야 했어요. 다행히 해결하긴 했는데 관제탑에서 무슨 일이냐며 소방차를 보내야 하냐고 묻기도 했었죠. 그때 별생각이 다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중동 최대 항공사 입사 시험에 합격한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보통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항공사는 서류 전형에서 자체적으로 추려서 인터뷰를 하러 오라고 개별 연락을 해요. 그러면 시뮬레이터라고 비행 기술시험도 중요하지만, 사이코메트리 테스트, 그룹 디스커션, 아이큐 검사, 면접을 3일 동안 보는데 첫날 떨어지면 호텔로 전화가 오죠. 회사는 외향적인 사람을 원하는데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시험 날 저는 저를 버렸답니다. ‘나는 오늘 내가 아니다’ 생각하며 회사에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했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인사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면접관이셨어요. 그래서 첫날 16명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저를 포함해 2명이 남았었죠.
그렇다면 직종을 불문하고 해외 취업 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영어가 필수죠. 특히 토익보다 실무 영어가 중요해요.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에서 벗어나 박스에서 나와서 생각을 해야 한답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관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요. 중동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문화가 비슷한데 다국적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에 20%만 자국민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노동자에요. 다 맞출 수는 없지만 다름은 인정해야 하죠. 유럽인, 아랍인 등 인종차별도 있고 저 또한 받은 적도 있지만 그런 것을 속으로 앓지 않고 누가 나에게 불이익을 주면 나서서 얘기하며 하나씩 바로 잡아갔어요. 그 사람이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그건 그 사람의 몫인 거죠.
현직자로서 느낀 파일럿이란 직업은 어떤가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고 경제적으로 수입이 안정적이라 매력적이지만 스트레스도 많아요. 6개월에 1번씩 시험을 보는데 2번 떨어지면 비행이 중단되죠. 3일 동안 시험을 보는데 그냥 시험이 아니라 시뮬레이터를 놓고 위급상황을 시험 봐요. 이 직업을 갖는 한 평생 봐야하기 때문에 모든 파일럿들이 스트레스를 받죠. 그리고 체력도 중요해요. 시차가 있다 보니 밤에 출발해서 도착하면 또 밤인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체류시간이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 끄고 자야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롤 모델이 있으신가요?
식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롤 모델은 아버지예요. 항상 도전하시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으시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시는 정직함을 지닌 분이시죠.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물어보아도 저의 롤 모델은 아버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어요.
동문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가 항공사에서 대형 항공사로 소형 비행기에서 대형 비행기로 옮기며 지난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저의 다음 목표는 지금 운행하고 있는 A380의 기장이 되는 것이랍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본인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자신을 과소평가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과소평가하게 된답니다. 또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즐길 수 없다면 그것은 커리어가 아니라 본인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고문과 같은 것이 될 거예요. 현재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우선 기회가 오는 어떤 일이든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만 그 일이 나에게 열정과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면 신속하게 다른 일을 찾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오랜 방황 끝에 찾을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많은 일들을 해보면 그 안에서 나의 커리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다 보면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