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전공과 불어불문학전공은 11월 4일(화) 오후 6시, 인문사회관 101호에서 『사라지는 학문, 무너지는 민주덕성』 출판기념회 및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행사는 2022년부터 이어진 두 전공 신입생 미배정 결정의 경과를 정리하고, 대학의 학문 운영 방식과 공동체 의사결정 구조를 성찰하는 공론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행사장에는 교수, 재학생, 졸업생, 관련 학회 관계자, 교환대학 교수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발언과 질의가 이어져 현장은 열기와 집중으로 가득했다.
신입생 미배정 결정의 경과와 쟁점
독어독문학전공과 불어불문학전공의 신입생 미배정은 2022년 12월 28일 전체 교수회의에서 사전 안건 상정 없이 총장이 전공 배정 중단을 공표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해당 안건은 대학평의원회에서 두 차례 부결되었으나, 동일한 안건이 반복 상정된 끝에 2024년 4월 가결되었고, 같은 달 이사회에 의해 2025학년도 신입생 미배정이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안된 ‘유럽학 전공 신설’ 방안은 학문 정체성과 교육 방향, 운영 방식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학문적 전통의 의미와 전공 존속의 가치
불어불문학전공 차지영 주임교수는 두 전공이 1980년대 개설 이후 한국·유럽 문화 연구와 외국어문학 교육의 기반을 이루어온 역할을 설명하며, 학문은 단순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공동체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학과의 지속 여부를 넘어, 앞으로 무엇을 계승하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학문은 단절될 수 없는 역사 속에서 성장합니다.”
독어독문학전공 곽정연 주임교수는 전공 조정 과정에서 학문 공동체 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덕성여대는 이번 결정으로 학문적 다양성 측면에서 깊은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학과 통폐합은 오랜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번 과정은 급하게 추진되었고 공론의 장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교수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 체계가 필요합니다.”

국내·국제 학술 공동체의 연대
주한 독일문화원 아스트리드 마트론 문화부장은 어문학은 타 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기반이라고 강조하며, 전공 폐지는 장기적으로 국제적 교류와 학술의 폭을 좁힐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학회 신정아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강창우 회장, 한국불어불문학회 송진석 회장 역시 각각 격려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두 전공은 한국의 문화·예술·국제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문학과 기초학문을 시장 논리로 축소하는 것은 대학의 본래적 가치와 교육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 하인리히뵐학회 회장은 인문학은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하며, 대학의 인문학 전통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본 대학교 알브레히트 후베 명예교수 역시 “언어교육은 국제 교류의 토대이며, 대학은 그 기초를 책임져야 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목소리 — “전공 선택권은 학습권입니다”
행사장에서는 재학생과 신입생들의 직접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신입생들은 입학 후에야 전공 미배정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혼란과 상실감을 표현했다.
독어독문학전공 학생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는 취업으로 향하는 정류장이 아니라, 지성이 뿌리내리는 토양이어야 합니다. 학습권은 보호되어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화학 전공을 준비 중인 25학번 학생은 “독일 유학을 계획하며 독어 학습이 필수적이지만, 전공 미배정으로 진로 선택에 제약이 생겼다”고 말했다.
23학번 사학전공 학생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구성원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학문 공동체는 구성원이 참여할 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25학번 글로벌융합대학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학 전에는 전공 미배정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전공 선택이 매우 중요한 과정인 만큼, 학생이 정보를 충분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동문 사회의 연대 — “우리는 계속 지켜낼 것입니다”
불어불문학전공 총동창회장 문진아 동문은 지난 4년간 전공 구성원들이 보여 준 연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교수님들과 학생들은 전공을 지키기 위해 단단하게 버텨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학문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책임과 신념의 표현이었습니다. 학문은 그 자체로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학문은 누군가의 꿈이고, 대학은 그 꿈이 이어지는 자리
이번 출판기념회와 공개토론회는 독어독문학·불어불문학 전공의 신입생 미배정이라는 개별 전공의 사안을 넘어, 대학이 학문 공동체로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한 자리였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권과 전공 선택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교수는 학문을 전승하고 연구할 책임을 지니고, 대학은 이러한 지성과 배움의 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임이 확인되었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덕성여대가 공론의 절차와 학문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운영 원칙을 강화하고, 구성원 간의 소통을 회복하며, 학문과 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