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1950
고난 속에 세워진 여성교육의 기틀차미리사는(1879~1955) 3.1운동 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하고 그 안에 부인야학강습소를 두어(1920) 여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근화학원(1923), 근화여학교(1925), 근화여자실업학교(1935)로 성장했고, 일제의 압력으로 1938년 덕성여자실업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 1987
대학 설립과 종합대학교로의 비상1950년 덕성여자초급대학을 설립하고, 1952년에 4년제 대학인 덕성여자대학으로 개편하였다. 고등교육으로의 확장은 덕성학원이 성장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1979년 쌍문동 캠퍼스를 완공하고, 1987년 종합대학교인 “덕성여자대학교”로 승격되어 명실공히 후기대학 최고의 여자대학이 되었다.
1987 현재
학내민주화와 ‘덕성’의 재발견1980년대부터 치열했던 학내민주화운동이 1997년부터 본격화되어 진정한 ‘민주덕성’으로 발돋움했다. 2000년 학내 구성원들은 설립자 차미리사선생을 재발견하고 뿌리를 찾는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차미리사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되살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를 교훈으로, 4월 19일을 창학기념일로 변경했다.
현재 미래
창학 100주년, 미래로 향한 도약2020년 덕성은 창학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구성원들이 만들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반으로 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나가기를 기대한다.